아홉 개의 1,000m 봉우리로 이루어진 별자리, 영남알프스. 가을 억새의 바다와 완등이라는 이름의 아홉 번의 약속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가을이 오면 영남의 산꾼들은 잠을 설친다. 신불평원의 억새가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바람이 지나갈 때마다 은빛 물결이 산등성이를 통째로 쓸고 가는 풍경. 영남알프스라는 이름이 유럽의 산에서 빌려온 것이라면, 이 억새의 바다만큼은 어디서도 빌려오지 않은 이 땅의 것이다.
영남알프스 종주는 조금 특별한 종주다. 하나의 정해진 선이 아니라, 아홉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별자리이기 때문이다. 가지산, 운문산, 천황산, 재약산, 신불산, 영축산, 간월산, 고헌산, 문복산. 이 아홉 개의 1,000m급 봉우리를 잇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태극 모양으로 크게 휘돌아 며칠에 걸쳐 걷는 사람이 있고, 한 계절에 하나씩 아껴가며 오르는 사람이 있고, 완등 인증서를 목표로 주말마다 내려오는 사람이 있다. 선이 아니라 별자리라서, 저마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산군을 완성한다.
능선의 서사
수집. 이 산군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단어일지도 모른다. 아홉 개의 봉우리는 아홉 개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가지산의 맏형 같은 묵직함, 운문산의 깊은 골, 신불산 공룡능선의 날카로움, 영축산에서 내려다보는 통도사의 지붕들, 간월재 억새밭의 광활함. 하나를 오르면 능선 건너편의 다음 봉우리가 보이고, 그 봉우리가 다음 산행의 약속이 된다. 완등이란 결국 아홉 번의 약속을 모두 지킨 사람에게 주어지는 이름이다.
그래서 이 종주는 '해치우는' 산행이 아니라 '쌓아가는' 산행이다. 인증 배지 하나에 담긴 것은 거리나 고도가 아니라 계절들이다. 억새가 피던 날, 눈이 쌓이던 날, 운문산 골짜기에 안개가 차오르던 날. 아홉 봉우리를 다 오른 사람의 지도에는 아홉 개의 날씨가 함께 찍혀 있다.
계절 노트
- 봄 — 진달래와 철쭉이 능선을 차례로 물들인다. 종주 시즌의 개막.
- 여름 — 1,000m 능선이라 바람은 시원하지만 그늘 없는 구간이 길다. 이른 출발이 답.
- 가을 — 이 산군의 왕관. 신불평원·간월재·사자평의 억새가 절정에 이르는 10~11월, 능선은 은빛 바다가 된다.
- 겨울 — 상고대와 눈꽃의 계절. 인적 드문 겨울 종주는 이 산군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팩트 박스 (참고치)
- 9봉: 가지산(1,241m) · 운문산 · 천황산 · 재약산 · 신불산 · 영축산 · 간월산 · 고헌산 · 문복산
- 종주 방식: 태극종주(수십 km, 1박 이상), 권역별 연계 산행, 9봉 완등(회차 분할) 등 다양
- 인증: 울주군 완등 인증 사업 운영 — 2026년은 7봉 체제 (가지산·간월산·신불산·영축산·천황산·고헌산·운문산 / 재약산·문복산 제외), 월 최대 2봉 인증
- 난이도: 연계 방식에 따라 중급~최상급까지 스펙트럼이 넓음
이 길을 걸은 사람들
영남알프스는 종주 방식이 여럿이라, 다봉 연계의 대표 유형별로 시작·종료 좌표를 검증해 골랐다.
- 배내봉~간월산~신불산~영축산~재약산~천황산 (35.9km · 누적상승 5,191m) — 배내고개 원점회귀 6봉 환종주
- 밀양 영남알프스 6산 환종주 (25.2km · 3,520m) — 배내고개 기점의 또 다른 다봉 연계
- 영남알프스 태극종주 1일차 (35.8km · 2,090m) — 운문산 권역에서 배내로 이어지는 태극종주의 전반부
커버 사진: Kiduk Yang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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