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의 하루는 놀랄 만큼 단순합니다. 걷고, 먹고, 씻고, 자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리듬에도 요령이 있고, 특히 식사는 아는 만큼 즐거워집니다. 이 글에서는 전형적인 순례자의 하루를 시간 순서로 따라가며, 아침 조달부터 순례자 메뉴, 마트 자취, 한국 음식의 현실까지 정리합니다.
순례자의 하루 — 전형적인 시간표
| 시간(대략) | 하는 일 |
|---|---|
| 5:30~6:30 | 기상, 짐 정리 (침낭·소지품은 전날 밤 미리 꾸려 둡니다) |
| 6:00~7:00 | 출발. 여름에는 해 뜨기 전, 헤드랜턴을 쓰기도 합니다 |
| 8:00~9:00 | 첫 마을 바르에서 아침 겸 휴식 |
| 10:30~11:30 | 두 번째 휴식, 간식 |
| 13:00~14:30 | 목적지 도착, 알베르게 체크인 |
| 14:30~17:00 | 샤워, 손빨래, 낮잠 또는 마을 산책 |
| 19:00~20:30 | 저녁 식사 (순례자 메뉴 또는 자취) |
| 21:30~22:00 | 취침. 대부분의 알베르게가 22시 전후 소등합니다 |
왜 이렇게 일찍 걷는지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여름 오후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스페인 내륙의 한낮은 대략 35도를 넘나듭니다. 둘째, 예약 없이 걷는 경우 선착순 알베르게의 침대를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오후의 자유 시간이 순례의 절반이기 때문입니다. 빨래를 널어 두고 마을 광장에서 보내는 오후가 이 길의 진짜 낭만입니다.
새벽 출발 시 예절도 있습니다. 도미토리에서는 전날 밤에 배낭을 다 싸 두고, 아침에는 비닐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최소화하며, 짐은 복도나 로비로 들고 나와서 정리합니다.
아침과 간식 조달
스페인의 아침은 늦고 가볍습니다. 알베르게에서 아침을 제공하는 경우는 절반이 안 되고, 제공해도 빵과 커피 정도입니다. 현실적인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 전날 마트에서 사 두기 — 바나나, 요거트, 빵, 견과류를 사서 출발 직후 걸으며 먹습니다.
- 첫 마을 바르 노리기 — 한두 시간 걸어 첫 마을에 도착하면 바르가 문을 엽니다. 빈속 출발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이쪽이 훨씬 즐겁습니다.
간식은 주머니에 넣기 좋은 것들이 좋습니다. 견과류, 초콜릿, 말린 과일, 그리고 현지에서 흔한 오렌지가 단골입니다. 마을 간격이 긴 구간(특히 메세타)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여분을 챙깁니다.
바르(Bar) 문화 — 순례길의 휴게소
스페인의 바르는 술집이라기보다 카페, 식당, 매점, 사랑방을 겸하는 공간입니다. 순례길에서는 사실상의 휴게소 역할을 하며, 아침이면 바르마다 순례자들이 카운터를 채웁니다. 알아 두면 좋은 기본 메뉴는 다음과 같습니다.
- 카페 콘 레체 — 우유를 넉넉히 넣은 커피. 대략 1.5~2유로. 순례자의 국민 음료입니다.
- 또르띠야 — 감자를 넣은 스페인식 오믈렛. 한 조각이면 든든한 아침이 됩니다.
- 보카디요 — 바게트 샌드위치. 하몽, 치즈, 또르띠야 등 속을 골라 점심 도시락으로도 좋습니다.
- 갓 짠 오렌지 주스 — 즉석에서 짜 주는 곳이 많고, 아침 세트로 주문하면 조금 저렴해집니다.
바르에서는 크리덴시알에 도장(세요)을 받을 수 있고,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음료 하나라도 주문하고 이용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주문은 카운터에서 직접 하는 경우가 많고, 계산은 나갈 때 한꺼번에 하는 집도 흔합니다.
순례자 메뉴 — 하루의 보상
저녁의 대표 선택지는 순례자 메뉴(Menú del Peregrino)입니다. 대략 10~15유로에 3코스가 나옵니다.
- 전채 — 샐러드, 파스타, 렌틸콩 스프, 갈리시아식 수프 등에서 선택
- 메인 — 고기 구이, 생선 요리, 닭 요리 등에서 선택
- 디저트 — 아이스크림, 케이크, 요거트, 과일 등
여기에 빵과 와인(또는 물)이 포함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양이 상당해서 하루 종일 걸은 몸에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스페인의 일반 저녁 시간은 21시 이후로 늦지만, 순례자 마을의 식당들은 대략 19시부터 순례자 메뉴를 냅니다. 갈리시아에 들어서면 문어 요리(뽈뽀)를 파는 집이 많아지는데, 이 지역의 명물이니 한 번은 꼭 드셔 보시길 권합니다.
마트 자취 — 비용과 야채를 동시에
주방이 있는 알베르게라면 자취도 훌륭한 선택입니다. 파스타, 샐러드, 계란, 과일 정도의 저녁이면 1인당 대략 5유로 안팎으로 해결되고, 외식에서 부족하기 쉬운 야채를 보충할 수 있습니다. 다른 순례자들과 재료를 모아 함께 요리하는 저녁은 순례길에서 가장 따뜻한 기억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마트 이용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 시에스타 — 작은 마을 상점은 대략 14~17시에 문을 닫습니다.
- 일요일 휴무 —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아예 열지 않는 곳이 많습니다. 토요일에 미리 장을 봐 둡니다.
- 작은 마을에는 마트가 없을 수 있습니다 — 다음 날 묵을 마을의 규모를 미리 확인합니다.
한국 음식, 어디까지 가능한가
솔직히 말해 순례길에서 한국 음식 조달은 쉽지 않습니다.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 같은 대도시의 아시아 식료품점에서 라면이나 기본 소스 정도를 구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고, 작은 마을에서는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많은 한국인 순례자들이 가볍고 부피 작은 것들을 조금 챙겨 갑니다. 튜브형 고추장, 컵스프형 국 블록, 라면 스프 몇 개 정도면 파스타나 밥 요리에 섞어 훌륭한 위로가 됩니다. 다만 짐 무게와의 타협이 우선입니다. 2~3주 치를 짊어질 필요는 없고, 대도시에서 보충한다는 생각으로 최소한만 가져가는 것을 권합니다. 그리고 한 달쯤 걷다 보면 또르띠야와 뽈뽀가 생각보다 빨리 소울푸드가 됩니다.
하루 예산 감각
- 숙박(공립·사립 알베르게): 대략 10~18유로
- 아침+간식: 대략 5~8유로
- 저녁(순례자 메뉴 기준): 대략 10~15유로, 자취 시 5유로 안팎
- 합계: 하루 대략 30~45유로
작은 마을의 바르와 알베르게는 현금만 받는 곳이 아직 많으니, 현금을 늘 어느 정도 지니고 다니는 것이 마음 편합니다. 단순한 하루가 한 달 반복되면 그것이 곧 순례의 리듬이 됩니다. 그 리듬 속에서 매일의 카페 콘 레체 한 잔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걸어 본 사람은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