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을 걸어 마침내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이상하게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도착은 끝이 아니라 여정의 마지막 장입니다. 이 글에서는 대성당 앞 광장에 서는 순간부터 증서 발급, 순례자 미사, 땅끝 마을 연장 코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까지를 순서대로 정리합니다.
오브라도이로 광장 — 도착의 순간
몬테 도 고소 언덕을 내려와 시가지를 통과하면 구시가의 좁은 골목이 시작됩니다. 백파이프 소리가 울리는 아치 통로를 지나는 순간, 갑자기 시야가 트이며 대성당의 파사드가 눈앞에 나타납니다. 이곳이 오브라도이로 광장입니다.
대부분의 순례자는 여기서 배낭을 내려놓고 광장 바닥에 주저앉거나 아예 드러누워 대성당을 올려다봅니다. 한 달 동안 함께 걸었던 얼굴들이 하나둘 도착할 때마다 포옹이 이어집니다. 서두를 것 없습니다.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리는 것이 도착의 첫 번째 할 일입니다.
순례증서(콤포스텔라) 발급
도착 의식이 끝나면 순례자 사무소로 향합니다. 대성당에서 도보 몇 분 거리입니다.
- 발급 조건 — 도보 기준 마지막 100km 이상(자전거는 200km 이상)을 걸었음을 크리덴시알의 도장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사리아 이후 구간에서는 하루 2개 이상의 도장이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해 두십시오.
- 절차 — 온라인 등록 후 순번을 받아 대기하고, 창구에서 크리덴시알을 확인받으면 라틴어로 이름이 적힌 콤포스텔라를 받습니다. 콤포스텔라 자체는 무료이고, 출발지와 총거리가 적힌 거리 증명서는 소액의 비용으로 추가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 대기 시간 — 성수기 오후에는 대기가 꽤 길어질 수 있습니다. 도착 당일 오후가 붐비면 다음 날 아침에 가는 것도 방법입니다.
증서는 종이 한 장이지만, 도장이 빼곡한 크리덴시알과 함께 순례 전체를 증명하는 물건이 됩니다. 지관통(원통형 케이스)을 함께 구입해 구겨지지 않게 가져오는 것을 권합니다.
순례자 미사와 보타푸메이로
대성당에서는 매일 순례자를 위한 미사가 열립니다. 정오 무렵 미사가 가장 유명하며, 미사 중 그날 도착한 순례자들의 출발지와 국적이 낭독되는 순간은 종교와 무관하게 뭉클합니다.
많은 분들이 기대하는 보타푸메이로(천장에 매달아 흔드는 대형 향로)는 매일 등장하지 않습니다. 특정 축일이나 단체의 사전 신청이 있는 날에만 운영되므로, 보게 된다면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습니다. 미사 참석 시 큰 배낭은 반입이 제한되니 숙소에 두고 가십시오. 미사 외에도 제단 뒤의 성인상을 안는 전통, 지하의 성 야고보 유해 참배, 박물관과 지붕 투어 등 대성당에서 보낼 거리가 많습니다.
피스테라와 무시아 — 땅끝까지 걷기
중세 순례자들은 산티아고에서 멈추지 않고 대서양 끝까지 걸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순례자가 이 전통을 따라 피스테라(피니스테레)까지 여정을 연장합니다.
- 도보 연장 — 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까지 약 90km, 보통 3~4일이 걸립니다. 순례자가 확 줄어든 조용한 길과 갈리시아의 숲, 그리고 마지막에 바다가 나타나는 순간이 압권입니다. 무시아까지 함께 도는 경우 하루 정도가 더 필요합니다.
- 버스 당일치기 — 시간이 없다면 산티아고에서 버스로 다녀올 수 있습니다. 아침에 출발해 피스테라 곶과 무시아를 둘러보고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이 일반적입니다.
- 0.0km 표지석 — 피스테라 곶 등대 옆의 0.0km 표지석 앞에서 대서양으로 지는 해를 보는 것이 이 연장 코스의 정점입니다.
한 가지 당부가 있습니다. 과거에는 곶에서 신발이나 옷을 태우는 의식이 유행했지만, 화재 위험 때문에 금지된 지 오래입니다. 절대 따라 하지 마십시오. 피스테라와 무시아에서는 도보 완주자에게 별도의 완주 증서를 발급해 주기도 하니 크리덴시알을 계속 지참하십시오.
산티아고 시내에서 보내는 하루
도착 후 하루 이틀은 산티아고에 머물며 도시를 즐기는 것을 권합니다.
- 구시가 산책 — 골목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입니다. 배낭 없이 걷는 돌길의 감각이 새삼 낯설고 좋습니다.
- 전통 시장 — 구시가의 오래된 시장에서 갈리시아의 해산물과 치즈, 제철 식재료를 구경하고 시장 안 간이 식당에서 바로 맛볼 수 있습니다.
- 갈리시아 미식 — 문어 요리 뽈뽀, 관자와 조개 요리, 아몬드 케이크인 타르타 데 산티아고가 대표 메뉴입니다. 완주 기념 만찬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 순례자들과의 재회 — 광장과 골목에서 길 위에서 스쳤던 얼굴들을 계속 다시 만나게 됩니다. 연락처를 나누기 좋은 마지막 기회입니다.
돌아오는 길 — 귀국 동선 짜기
산티아고에는 국제공항이 있어 유럽 주요 도시로 어렵지 않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한국행 직항은 없으므로 보통 다음 동선 중 하나를 택합니다.
- 산티아고 → 마드리드 → 인천 — 가장 일반적입니다. 항공편 외에 고속열차로 마드리드까지 대략 3~4시간에 이동할 수도 있습니다. 마드리드에서 1~2일 머물며 미술관과 광장, 근교 소도시를 둘러보고 귀국하면 여정의 균형이 좋습니다.
- 산티아고 → 파리 → 인천 — 입국 때 파리를 경유해 생장으로 들어갔던 분들이 자주 택하는 대칭 동선입니다. 파리에서 며칠 여행을 붙이기 좋습니다.
- 산티아고 → 기타 유럽 도시 — 바르셀로나, 리스본, 포르투 등으로 이동해 여행을 이어 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포르투는 다음 순례(포르투갈길)의 답사를 겸할 수 있습니다.
항공권과 관련해 실전 팁 하나. 도보 여행은 도착일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부상이나 컨디션으로 하루 이틀 늦어지는 일이 흔하므로, 귀국편은 예상 도착일보다 2~3일 여유를 두고 잡는 것이 안전합니다. 그 여유가 곧 피스테라와 산티아고 시내를 즐기는 시간이 됩니다.
돌아온 뒤에
집에 돌아오면 한동안 새벽마다 눈이 떠지고, 어디든 걸어가고 싶어지는 후유증이 옵니다. 이때 기록을 정리해 두면 여정이 온전히 남습니다. 하루하루의 GPS 기록과 사진, 짧은 메모를 에브리트레일에 올려 두면 나중에 같은 길을 준비하는 분들에게도 좋은 참고가 됩니다. 그리고 많은 순례자가 그렇듯, 정리를 끝낼 때쯤이면 이미 다음 길(포르투갈길, 북쪽길)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